2024년 11월 55세 중년의 생일을 맞은 삼성전자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는 뉴스가 흘러 나온다.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가 헤쳐온 반도체의 역사를 흘낏 살펴보자.
매일경제 24.11.1 삼성전자가 조용한 생일 보낸 이유
1. 1983년 11월 7일 당시 업력 14년의 신생 기업이었던 삼성전자는 세계 3번째로 64Kb(킬로비트) D램을 개발했다. 한국 산업사를 넘어 한민족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날 본격 태동했다.
2. 삼성전자는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공업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창립자의 아들이었던 32세 이건희 회장은 1974년 사재 4억원을 투자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아버지가 허락해 주지 않자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3, 1978년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정식으로 인수해서 회사 이름을 삼성반도체통신으로 바꿨다. 반도체에 삼성의 이름을 달아 주는 순간이었다.
4. 1983년 3월 15일, 삼성그룹은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발표문을 내 놓았다. 자원이 없는 한계,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 성실한 인적 자원, 세계의 보호 무역주의, 성장의 정체 같은 이유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인 반도체 산업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5. 곧 이어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냈다.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 자본, 삼성그릅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이 그 이유였다. 당연히 의지와 희망만 담은 삼성전자의 선언문보다 합리적인 글이었다.
6. 삼성전자는 밑바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반도체 사업 투자를 앞두고 당시 시장에 출시된 S롬, EP롬, EEP롬, D램 중 어느 제품의 생산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이건희는 D램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부터 고비고비마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이건희 회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7. 당시 D램은 수요가 가장 많고 표준화된 제품이었다. 소품종 대량 생산에 유리했다. 하지만 막강한 경쟁자가 많은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과 전자 산업 왕국 일본에 무려 9개의 선도 업체가 존재했다. 도전자 삼성전자는 1983년 5월, D램 개발에 착수했다
8. 1983년 11월 7일, 삼성은 64kb의 D램을 개발했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삼성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반도체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당시 41세였던 이건희는 미래를 낙관하는 젊은 엔지니어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일본과 겨루는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9. 삼성전자는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309개 공정까지 자력으로 개발했다. 웨이퍼를 생산 라인에 본격 투입했다.
10. 1983년 12월 1일, 삼성전자는 중대 발표를 했다. 반도체 개발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생산, 조립, 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벽하게 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12. 기쁨도 잠시, 1984년 D램 시장의 대 폭락기가 왔다. 1984년 초 개당 3달러였던 64Kb 가격이 0.75달러(75센트)로 1/4토막이 됐다. 31달러 하던 256Kb 가격은 3달러로 1/10토막이 됐다.
13. 삼성전자는 다른 사업에서 벌어들이던 돈을 D램에 쏟아부으며 1980년대를 버텨냈다. 1987년이 되자 반도체 경기가 살아났다. 1988년 드디어 흑자가 나고 반도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14. 1988년 11월 1일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통신이 정식으로 합병했다. 19세 성년에 들어선 삼성전자의 창립기념일은 이 날로 정해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발판으로 눈부시게 활약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15. 1989년 삼성전자는 차세대 4Mb D램의 설계 방식으로 구멍을 파내는 트렌치형보다 위로 올리는 스택형을 선택했다.작업이 용이하고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어 품질을 균질하게 하는 신의 한 수였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젊은 엔지니어였던 진대제, 권오현 등과 토론하면서 과감한 기술적인 결정을 내렸다.
16. 1992년 9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했다.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지 10년도 안 되는 동안 세계 선두의 자리에 오른 대단한 성과였다. 삼성은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일본 도시바를 추월하고 D램의 1위를 기록했다.
17.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년)'에서 순양의 진양철 회장은 국내 1위를 자랑하는 아들 진영기에게 '니 어데 전국 체전 나가나'하고 말하며 안주하는 아들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본다. 1992년 64Mb D램 개발로 삼성전자는 드디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가 됐다.
18. 1992년 이후에도 삼성전자의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적 기업들과의 숱한 치킨게임 속에서도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D램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경쟁자가 올라오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과 양산력으로 도전을 물리쳤다. D램은 삼성전자 최고의 캐시카우가 됐다.
19. 20세기 말을 뜨겁게 달궜던 닷컴 버블이 꺼졌다. IT 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20. 2001년 2월 64Mb D램 가격이 3.8달러로 폭락했다. 2000년 버블 절정기 때 20달러에 달하던 물건이었다.
21. 삼성은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했다. 2001년 삼성은 300mm 웨이퍼를 이용해 120나노 512Mb D램 양산을 시작했다. 경쟁자인 일본의 엘피다는 300mm 적용을 2002년으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22. 버블이 꺼졌지만 IT 혁신은 유효했다. 삼성은 애플의 혁신가 스티브잡스에게 자사의 낸드플래시를 이용한 제품 출시를 제안했다. 2005년 애플은 아이팟을 내놓았고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23. 2007년 스티브잡스는 스마트폰을 발표했다. 세상이 그 발표 전과 후로 나뉘었다.
24. 2011년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삼성은 놀라운 속도로 발빠르게 갤럭시 S1을 출시해 거대한 변화를 따라잡았다. 그 안에 자체 개발한 AP까지 탑재하는 기염을 토했다. 2024년 전세계 AP의 40%를 점유하는 대만의 미디어텍은 당시에는 시장 진입도 못한 상태였다.
25. 2013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로의 셀을 수직으로 적층하는 3D V낸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낸드의 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은 그만큼 상승했다.
26.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애플이 삼성과 헤어지려 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는 기사를 냈다. 애플로서는 자사의 스마트폰과 경쟁하는 삼성에 설계 도면을 내놓는 것이 아무래도 탐탁치 않았다.
27. 2013년 애플은 연간 1.6억 개의 AP를 삼성으로부터 공급 받았다. 삼성 파운드리 고객의 60%가 애플과 삼성의 AP였다.
28. 2015년 1월 삼성은 스마트폰에서는 최초로 14나노 공정을 적용한 자체 AP인 엑시노스 7420의 양산을 시작했다. 인텔이 2015년 1월 16일 PC의 CPU에서 최초로 14나노 브로드웰을 출시한 바로 직후였다. 삼성의 초격차는 확고해 보였다.
29. 2015년 3월 삼성의 갤럭시S6에 14나노 엑시노스 7420이 탑재됐다. 시장의 반응이 좋았다. 갤럭시 S6는 누적 판매량 1,450만대로 홈런을 쳤다.
30. 2015년 11월 삼성 14나노 기반으로 퀄컴의 스냅드래곤 820이 출시됐다. 역시 시장의 반응이 좋았다. 원래 퀄컴은 스냅드래곤 820을 10나노 핀펫 공정으로 설계했지만 실제로는 삼성의 14나노로 양산했다. 삼성 14나노에 스냅드래곤 820을 전량 맡기는 대신 2016년 출시작인 갤럭시S7에 퀄컴칩을 탑재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31. 삼성 14나노 파운드리의 경쟁력, 삼성 갤럭시의 강력한 점유율이 이루는 시너지는 이처럼 대단했다. 퀄컴 같은 기업도 삼성이 정하는 게임의 룰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그래픽카드를 만들던 엔비디아는 그저 여러 개의 고객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32. 2016년에서 2018년까지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대단하게 일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생활 속으로 침투하면서 데이터 생산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33.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
34. 2016년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조원, 영업이익은 29조원이었다. 2017년 매출은 240조원, 영업이익은 53조로 늘었다. 한 분기 영업이익만 15조원이었다. 2018년 매출은 244조원, 영업이익은 59조원으로 또 늘었다.
35. 2016년 TSMC가 FOWLP 기술을 개발해 애플의 AP 물량을 삼성으로부터 가져갔다. FOWLP는 웨이퍼 단에서 Fan-out 방식으로 패키징을 완결하는 것이었다. 패키지 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품 두께 20% 감소, 속도 20% 향상, 전력손실 10% 감소를 이뤄냈다. 스마트폰과 AP의 경쟁자였던 삼성과의 거리두기를 원했던 애플은 대단히 만족했다.
36. 2016년 9월 애플의 아이폰 7과 7+의 AP인 A10 퓨전은 전량 TSMC 16나노에서 생산됐다. 처음으로 애플이 삼성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이었다. 이후로 애플은 삼성 파운드리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FOWLP라는 패키징 기술로 애플을 뺐기고 TSMC에 기회를 준 것은 훗날 삼성에게 뼈 아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37. 2016년 10월 삼성이 모바일에서는 최초로 10나노 공정을 적용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830이 10나노 공정에서 양산됐다.
38. 2017년 11월 애플의 아이폰X A11 바이오닉 AP가 TSMC의 10나노 공정으로 출시됐다. TSMC의 10나노는 성능이 압도적이었다. TSMC가 초미세 공정의 경쟁력으로 본격적으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선단공정은 압도적 물량의 애플에 밀어주고 레거시 물량은 AMD, 퀄컴, 엔비디아 등에 주면서 삼성으로부터 고객을 점점 뺐아갔다.
39. 2018년도 상반기 갤럭시S9 국내판에 탑재된 AP 엑시노스 9810이 혹평을 얻었다. 이 칩을 설계한 삼성의 CPU 설계팀인 몽구스팀이 큰 비판을 받았다. 반면, 같은 삼성 팹에서 만들어진 스냅드래곤 845는 호평 일색이었다. 삼성이 가진 설계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40. 2019년이 되자 데이터센터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도 종료되었다. 삼성전자의 매출도 하향세로 들어섰다. 삼성전자의 2019년 매출은 230조원, 영업이익은 27조원으로 줄었다. 연간 영업이익 27조원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전년도 59억원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었다.
41. 2019년 11월 몽구스팀이 해체됐다. 이로서 삼성은 자체 CPU 개발을 포기했다.
42. 2019년 TSMC가 7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TSMC의 선단공정 경쟁력이 독보적이었다. 삼성은 2019년말 EUV 장비를 활용한 7나노 양산라인을 구축했다. 기존 불화아르곤을 버리고 한 발 빠르게 EUV로 치고 나간 것이지만 좀처럼 수율, 발열, 성능이 개선되지 않았다.
43. 2021년 삼성전자의 오랜 파트너인 퀄컴이 차기 AP인 스냅드래곤870의 생산을 TSMC에 맡겼다. 당시 삼성이 생산하는 엔비디아의 칩도 성능은 경쟁자 AMD 칩보다 훌륭하지만 전성비가 나쁘다는 얘기를 들으며 삼성 파운드리의 먹구름이 점점 뚜렷이 보였다.
44. 2021년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한 자체 AP 엑시노스 2100의 발열 이슈가 불거졌다. 스마트폰을 잘 못 뽑으면 발열이 너무 심해서 쓸 수 없다는 뽑기 이슈가 생겼다.
45. 2021년 6월 삼성이 퀄컴의 스냅드래곤 875를 4나노 공정으로 수주했다는 반가운 기사가 나왔다. 스냅드래곤 895를 삼성이 생산하고, 895+를 TSMC가 생산하는 구도였다. 퀄컴이 오랜 고객인 삼성을 배려하면서도 TSMC와 경쟁을 시키는 모양새였다.
46. 2021년 9월 TSMC가 AMD, 퀄컴 등 주요 팹리스들에게 20%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 가장 중요한 고객인 애플에게는 고작 2~3%의 가격인상만을 요구했다. 볼멜소리가 나왔다. 삼성 파운드리의 반사 이익이 기대됐다.
47. 삼성은 치고 나갔다. 2021년 하반기 삼성은 2022년 하반기 상반기 3나노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고, 2025년에는 세계 최초로 2나노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천천히 3나노를 정착시키겠다고 계획한 TSMC를 단 한 번에 따라잡겠다는 전략이었다.
48. 2021년 하반기 10나노 이후부터 TSMC를 따라가기만 한 삼성전자가 3나노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다.
49. 2022년 3월 대만의 언론에서 삼성의 3나노 투자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시기 미국 언론에서는 삼성의 GAA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보도가 나왔다.
50. 2022년 상반기가 정확히 끝나는 날인 6월 30일, 삼성은 세계 최초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빅테크 고객을 유치하지는 못했다.
51. 2022년 9월 삼성 4나노로 생산한 스냅드래곤 875의 발열 이슈가 불거졌다. 갤럭시 S22에 탑재한 물량이었다. 반면 퀄컴은 TSMC 4나노에서 생산한 물량에는 만족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52. 삼성이 초미세공정의 수율과 발열 문제를 좀처럼 잡아내질 못했다.
53.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AI 시대가 갑자기 열렸다.
54. 2023년 8월 SK하이닉스가 AI용 초고성능 D램인 HBM3E 개발에 성공하고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했다.
55. 2024년 1월 삼성전자는 2나노, 1.7나노 공정으로 건설중이었던 평택 4, 5 공장 건설 중단을 협력 업체에게 통보했다. 수율이 안 나오고 고객이 없는 상태에서 초미세 공정 캐팩스 투자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56. 2024년 2월 삼성은 NC-MUF 방식으로 HBM3를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엔비디아 퀄 통과 소식은 없었다.
57. 2024년 4월 삼성전자의 법인세가 0원을 기록했다. 197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58. 2024년 6월 삼성 HBM의 엔비디아 탑재 가능성을 시사하는 젠슨 황의 발언에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젠슨 황의 한 마디에 울고 웃는 신세가 된 삼성전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59. 2024년 9월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9조원에 그치는 어닝쇼크가 나왔다. DS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의 사과문이 배포됐다. 삼성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D램의 1a도 안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60. 2024년 10월 삼성 파운드리, 시스템 LSI 인력이 메모리로 전진배치 됐다. 파운드리와 팹리스보다 우선 메모리 명가로서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사활을 건 모양새였다.
61. 2024년 11월 1일 삼성전자의 55세 생일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엄습해 있다. 삼성은 이 위기를 이겨내고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6개월 후 뉴스의 관전 포인트 1. 삼성의 초미세공정 파운드리는 빅테크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까? 2. 퀄컴은 단짝이었던 삼성으로 돌아올까? 3. 엔비디아는 삼성의 HBM을 구매할까? 4. 영업이익 9조원은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의 바닥일까? 5. 삼성은 메모리에서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까? 6. 애플, 엔비디아, 퀄컴, AMD, 브로드컴은 계속 TSMC만의 친구일까? 7 .인텔은 어떻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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