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유통] 롯데의 위기로 보는 대한민국 유통의 역사 2024년 12월

singgut 2024. 12. 8. 07:43

 2024년 12월, 재계 6위 롯데그룹이 휘청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롯데케미칼이 중국과 중동에서 쏟아내는 석유화학 제품으로 경쟁력을 잃으면서 구원 투수 노릇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이 더 이상 캐시카우로서의 힘을 내지 못 해 롯데건설 같은 불안한 계열사들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줄 수 없게 되었다. 롯데그룹은 돈 되는 자산을 팔면서 유동성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롯데의 주력 산업군이 동시 다발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줄곧 1등이었던 유통에서의 존재감 하락은 특히 뼈 아프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면세점, 세븐일레븐 등의 롯데 유통 계열사들의 국내에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유통이 겪고 있는 변화를 흘낏 살펴보자. 
 
조선일보, 24.12.7., 롯데렌탈 매각, 롯데그룹 1조6천억 원 확보, 사모펀드 어피니티에 경영권 지분 56% 넘기기로, 비상경영 전환 후 첫 자산매각

1. 2015년 사모펀드 MBK 파터너스는 홈플러스를 영국의 유통기업 테스코로부터 7.2조원에 인수했다. MBK 파트너스는 한국계 미국인인 김병주 회장이 2005년 설립한 아시아 최대의 사모펀드이다. (MBK는 김병주 회장의 이름 Michael ByungJu Kim의 약자이다)
 
2. 김병주 회장은 2023년 포브스 순위에서 자산 97억 달러를 기록했다. 80억 달러인 이재용 회장을 제친 한국인 1위였다. 세계 각국의 연기금, 국부펀드 등 LP들은 김병주 회장의 안목에 강한 신뢰감을 보인다.
 

3. MBK는 성공적인 딜을 많이 했지만 바이아웃 펀드(부실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 기업 가치를 올려 되팔아 수익을 내는 펀드) 관점에서 보면 홈플러스 딜에서는 이상하게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4. MBK는 2015년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으는 것)로 모은 외부 자금 2.2조원을 홈플러스 딜에 넣었다. 나머지 5조원은 홈플러스 자산(부동산)을 담보로 차입했다.
 
5. MBK는 인수 후에 세일앤 리스백(Sale and Lease Back, 건물을 매각한 후 다시 임차하여 임대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홈플러스 자산을 매각해 부채 5조원 중 4조원을 갚았다. 그만큼 홈플러스라는 기업 본체의 가치는 줄어들었다.
 

6.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유통이 지고, 온라인 유통이 뜨는 2015년 이후 한국 유통 환경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천하의 엘리트들이 즐비한 MBK도 이 같이 급격한 변화를 차마 예측하지 못 한 게 아닐까 싶다.
 
7. 홈플러스의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불과 4,713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이 기간 MBK가 지불한 이자는 3조 964억원이었다. 세일앤 리스백으로 임차한 건물의 임대료를 내야 하고, 오프라인 대형 마트의 위기는 여전하니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 하다.
 

8. 2024년 6월, MBK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만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시장에 매물로 내 놓았다. 매출 1.2조원, 전국 매장 413개, 업계 3위(GS리테일, 롯데슈퍼 다음) 회사였다. MBK는 8,000억원 수준의 가격을 기대하고 있지만 2024년 12월 기준,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9. 돈 벌 기회를 찾아내는 사모펀드의 냉철한 눈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한국 유통 환경의 변화는 급격했다. 이 여파는 또다른 유통의 강자 신세계 그룹에도 영향을 미쳤다.
 

10. 2018년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막 설립된 쓱닷컴에 당시 이커머스로는 최대 규모인 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04년 설립된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ffinity Equity Partners, 직역하면 유연한 자본 파트너)와 2006년 설립된 미국계 벤처캐피탈 블루런 벤처스(BRV, BlueRun Ventures)가 쩐주였다.
 
11. 신세계 그룹은 신생 기업 쿠팡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오프라인 유통 사업에서와 같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포부를 밝혔다. 신세계는 2023년까지 쓱닷컴 연매출 10조원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5년 내에 쓱닷컴의 거래액이 5.1조를 넘지 못하거나 복수 증권사로부터 IPO 의견서를 받지 못하면 1조원을 돌려주기로 FI들과 계약을 맺었다. 
    
12. 결과적으로 쓱닷컴의 2023년 매출은 1조 6,784억 밖에 미치지 못했다. 영업적자는 1,030억원이었다. 계약을 지키지 못해서 1조원을 돌려줘야 했던 신세계는 2024년 11월, 산업은행, 신한은행, NH 투자증권 등으로 구성된 새 쩐주를 찾아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13. 급한 불은 껐지만 2024년 말을 기준으로 쓱닷컴의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2018년 이후 쿠팡은 더욱 무섭게 성장했고, 네이버도 내공을 더욱 탄탄하게 굳혀서 이커머스에서 쓱닷컴의 존재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14. 2014년 로켓배송을 처음 시작한 쿠팡은 매출을 꾸준하게 늘려 2018년 4조 3,47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그러나 매출이 늘어난 만큼 적자도 늘어났다. 2018년 쿠팡의 영업적자는 1조 1,651억원에 달했다. 매출 4조에 적자 1조. 도저히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 성장모델이었다.
 

15. 쿠팡이 확신했건 아니건 간에 이커머스 플랫폼 시장은 계속 뜨겁게 달아 올랐다. 배달의 민족은 2019년 12월 독일의 딜리버리 히어로에 무려 4.8조원에 팔렸다. 배달 플랫폼이 그 정도 금액에 팔리는 것은 전통 경제의 관점에서 상상을 뛰어 넘는 일이었다.
 
16. 유통의 절대 강자 롯데도 2010년대 말을 휩쓸었던 유통 환경의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7.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백화점의 총 매출액은 29조원이었다. 롯데백화점은 31개 매장, 현대는 15개, 신세계는 12개 매장을 운영했다.
 
18. 롯데는 가히 유통의 왕국이었다. 롯데의 대형 오프라인 매장은 51개에 달했다. 백화점이 31개, 아웃렛이 20개였다. 전국에 깔린 롯데마트 124개, 슈퍼마켓 412개, 세븐일레븐 편의점 7,327개까지 포함하면 유통에서 롯데의 영향력은 무시무시했다.
 

19. 그러나 신생기업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으로 급속히 커지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공룡 롯데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10년대 후반 위기가 감지됐지만 롯데는 여전히 유통 경쟁력을 자신했다. 신동빈 회장은 2020년 3월 니혼게이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1,000억엔(당시 환율로 1조 1,000억원) 이상 적자를 내고도 주주로부터(손정의의 비전펀드) 보전 받을 수 있는 기업하고는 경쟁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 이커머스에서의 성공도 자신했던 롯데는 2020년 5월 롯데ON을 출범시켰다. 신동빈 회장은 "앞으로 롯데는 전자상거래 사업에 집중 지원할 것이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에서 따로 하던 인터넷 쇼핑 사업을 롯데ON으로 통합하겠다"고 말했다.
 
21. 롯데ON이 출발한 2020년대 이후에도 유통 환경은 급격하게 변했다.
 

22. 2020년 쿠팡의 매출은 13조 5,000억원으로 2년 전에 비해 3배로 늘었다. 무서운 성장이었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는 유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쿠팡의 영업이익 적자는 다소 줄었지만 코로나 같은 전혀 예측 못한 기회 속에서도 여전히 5,963억원 적자였다.
 
23. 2020년 롯데쇼핑의 매출액은 16조 1,844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3,461억원 흑자였다. 매출액은 롯데쇼핑이 쿠팡보다 3조가량 많았고, 이익 규모도 컸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 상장된 쿠팡의 기업 가치는 롯데쇼핑의 20배에 달했다. 
 

24. 2021년 2월에 더현대 서울이 문을 열었다. 현대백화점은 여의도에 8.9만㎥의 대형 매장을 신규 오픈하면서 아예 '백화점'이라는 말을 떼 버렸다. 첫해의 매출 목표는 6,300억원이었지만 8,000억원을 넘어섰다. MZ세대 방문율이 50%를 넘었다. 2022년에는 9,50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23년에는 1조 1,095억원으로 1조까지 넘어섰다.
 
25. 현대백화점의 MZ세대 공략은 저력이 있는 것이었다. 2015년에 개장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개점한 지 3년 만에 현대백화점 전체 점포 중 매출 1위를 올렸다. 2020년에는 현대백화점 점포 중 최초로 매출 1조를 넘겼다. 2023년 매출은 1조 6,670억원으로 성장을 계속했다. IT 업계의 고소득 직장인이 많은 판교테크노밸리의 특성을 고려해 MZ 남성 고객들의 놀이터로 촛점을 맞춘 전략이 주요했다.
 

26. 젊은 쇼핑 계층의 성장, 코로나로 인한 시장 변화, 시장에 풀린 엄청난 유동성에 힘 입어 2020년대 이커머스와 몰링 산업은 점점 더 커졌다. 2020년 161조원이었던 국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3년 227조원이 되었다(통계청). 정체된 국내 산업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는 분야였다. 2016년 신세계가 만든 스타필드 하남점, 2021년 여의도 더현대 등 젊은층을 겨냥한 몰링도 한층 진화했다.  
 
27. 2020년 매출 13조 5,000억원을 기록했던 쿠팡의 매출은 2023년 31조 4,000억원으로 또 2배 늘어났다. 쿠팡은 2023년 창사 이래 최초로 6천억원의 영업이익까지 올렸다.
 

28. 그 사이 롯데쇼핑의 매출은 계속 하향 추세를 그렸다. 2020년 16조 1,844억원이었던 매출은 2021년 15조 5,736억원, 2022년 15조 4,760억원, 2023년 14조 5,559억원으로 계속 줄어갔다. 불과 8년 만에 쿠팡하고의 매출액 비교가 무의미해졌다.
 
29. 롯데는 코로나 후 언택트와 개별화 서비스로 편의점 시장이 커지는 것에 대응해서 편의점 업계 5위인 미니스톱을 3,100억원에 사들여 세븐일레븐에 편입했다. 이로써 당시 점포수 기준으로 CU, GS25가 1.5만개, 롯데의 세븐일레븐이 1.4만개가 되었다.
 
30. 2021년 롯데는 2006년 설립된 한국계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IMM EE)와 협력해서 가구업체 한샘을 6,000억원에 인수했다. 롯데가 출자한 금액은 2,995억원이었다. 2012년 하이마트를 1.2조원에 인수한 후 다시 한 번 내구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큰 딜이었다.
 

31. 그러나 2024년말을 기준으로 편의점 업계에서 세븐일레븐의 존재감은 CU, GS25에 비해 미미하다. 하이마트와 한샘도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좀처럼 돈벌이를 못하고 있다.
 
32. 2020년 야심차게 시작했던 롯데ON도 그룹의 DNA를 이커머스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롯데ON의 매출은 2020년 1,350억원이었는데 2023년에도 여전히 1,351억원으로 제자리걸음 했다.
 
33. 이커머스에서 고전하기는 신세계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쓱닷컴에 1조 투자를 유치했던 신세계 그룹은 2021년 전통적인 온라인 쇼핑의 강자 이베이를 3.4조원에 인수하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이를 위해 1.7조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고 1.2조원에 성수동 사옥까지 매각했다. 이 딜로 쓱닷컴 3%, 이베이 12%의 시장 점유율을 합쳐서 이커머스에서 당시 신세계의 점유율은 15%로 올라갔다.
 
34. 2021년 당시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가 17%, 이마트(쓱닷컴+지마켓)가 15%, 쿠팡이 13%였다. 이 수치는 2022년 기준으로 쿠팡 24.5%, 네이버 23.3%, 이마트 10.1%, 11번가 7%, 카카오 5%, 롯데온 4.9%로 재편됐다(통계청).
 
35. 2020년 4년 동안 유통 업계의 상식은 눈에 띠게 달라졌다. 롯데는 압도적 1위였던 백화점 분야에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MZ는 현대, 명품은 신세계라는 백화점 인식이 굳어졌다.
 

36. 대형 마트 산업은 사양세가 더 뚜렷해졌다. 국내 128개의 매장을 가진 업계 1위 이마트의 매출액은 29.4조원으로 30조에도 못 미치고, 영업이익율은 1%를 하회한다. 국내 111개 매장을 운영하는 롯데마트는 매출 5.7조원에 2023년 영업이익 873억원으로 10년 만에 최대 흑자를 기록했지만 사람들이 마트를 별로 찾지 않는 유통 환경의 변화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새주인을 찾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37.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면세점 사업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후 중국의 리오프닝에도 회복하지 못해 가뜩이나 어려운 롯데, 신세계, 호텔신라의 골치거리가 되었다.

38. 롯데는 이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백화점, 마트, 편의점, 면세점 등 무엇 하나 녹록한 분야가 없다. 롯데ON의 이커머스 시장 매출액 비중 4.9%는 위기에 빠진 그룹의 유통 산업에 도움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M&A를 통해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고 했던 하이마트와 한샘 딜도 2024년 기준으로는 그다지 시너지를 못 내고 있다.
 
39. 2024년 12월, 롯데는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을 3천억원에 매각하려 하고 있다. 롯데렌탈은 2018년 쓱닷컴에 1조원을 투자하는데 참여했다가 2024년 돈을 돌려 받은 홍콩계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에 1.6조원을 받고 매각하기로 했다.
 

40. 롯데케미칼의 건축자재 사업부를 1조원에 매각하기 위한 작업도 추진 중이다. 롯데카드를 2조원에 매각하기 위한 물밑 협상도 진행 중이다. 젊은 층을 겨냥한 L7, 가성비를 앞세운 시티호텔 같은 호텔 브랜드도 팔려고 노력 중이다. 롯데의 상징 롯데타워도 6조원의 가치로 롯데케미칼 회사채 채권자인 은행에 담보로 내어 놓았다.
 
41. 롯데는 위기를 극복하고 유통업의 강자로 다시 등극할 수 있을까? 변해버린 유통 시장 환경과 화학 산업의 여건이 롯데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인 것 같다. 변화를 위한 롯데의 노력을 지켜보게 된다.
 

6개월 후 뉴스의 관전 포인트

1. 롯데는 돈 되는 자산을 몇 개나 매각해서 현금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을까?

2. 롯데타워의 담보 가치는 최종 얼마로 인정될까?

3. 롯데는 2024년말 기준에서는 사양산업처럼 보이는 화학과 오프라인 유통의 어려움을 결국 극복해낼 수 있을까?

4. 롯데와 같이 오프라인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이마트는 맞닥뜨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5. 쿠팡은 지금보다도 더 성장할 수 있을까?

6. 한국은 중국의 C 커머스를 지금처럼 잘 막아낼 수 있을까?

 


미국에서 펼쳐진 또 다른 탐험의 이야기입니다.